강제추행 사건의 딜레마
지금으로부터 십수 년 전, 필자는 한 기업의 공채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였다. 기대에 부풀어있던 첫 회식 자리에서 한 선임은 자기 입으로 찹쌀떡을 물어 그 자리에 있던 신입사원들의 입으로 전달받게 하는 비상식적인 행동을 했다. 이는 지금으로서는 충분히 성범죄에 해당하는 행동이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았기 때문에, 필자를 포함한 다른 직원들은 불쾌했던 기분을 토로하면서도 “이 정도를 범죄라고 하나?” “이 정도 일로 굳이 문제를 일으키면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하며 그냥 넘어갔었던 적이 있다.
최근 연달아 유사한 강제추행 사건을 다루며, 그 기준이 여전히 모호한 사례들을 접할 때마다 깊은 고민에 빠지곤 한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크게 개선되었지만, 법적 판단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는 여전히 많다. 과거에는 성희롱이나 강제추행에 대한 경각심이 낮아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던 반면, 오늘날은 법적 대응이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분명 바람직한 변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억울한 피의자가 발생할 가능성도 역시 높아진 것이 또 다른 문제로 파생되고 있다.
성범죄 사건의 핵심은 피해자 보호에 있지만, 그 과정에서 무고한 피의자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 특히 성매매나 강간처럼 행위가 명확한 범죄와 달리, 강제추행은 범위가 넓고 모호한 경우가 많아 더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 피해자가 부당한 피해를 보지 않도록 보호해야 하지만, 동시에 무고한 사람이 법적 절차로 인해 삶이 망가지는 일도 막아야 한다.
얼마 전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에서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을 변호하게 되었다. 처음 사건을 받아 검사가 작성한 공소장을 보았을 때는 지하철 내 강제추행 사건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장 CCTV 영상을 프레임 단위로 분석한 결과, 피해자의 진술과 모순되는 정황이 다수 발견되었다. 공판에서 피해자의 진술을 반박하는 신문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변호인의견서를 꼼꼼히 작성한 끝에 무죄 판결을 끌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피고인은 이미 큰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여유롭지 않은 형편에 변호 비용을 부담해야 했고, 경찰 수사 과정에서 강압적으로 성범죄자 취급을 받아 그 충격으로 공황장애와 대인기피증을 얻어, 그 결과 잘 다니고 있던 직장까지도 그만두게 되었다 (형사법의 대원칙인 무죄추정 원칙이 있음에도 현실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처럼 지하철과 같이 사람들이 밀집된 공간에서는 의도와 무관하게 여러 사람 간에 신체 접촉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예로, 강제추행 사건이 자주 발생하는 곳이 클럽이다. 특히나 클럽은 밀집된 환경 속에서 술과 음악의 영향으로 신체 접촉 역시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서울 마포경찰서처럼 클럽이 밀집한 지역을 관할 하는 경찰서에서는 오전에 술이 덜 깬 채 조사실을 드나드는 젊은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실제로 클럽 내에서 강제추행이 발생하는 때도 많지만, 불가피하게 발생한 단순한 신체 접촉조차 강제추행으로 고소되는 사례도 상당하다. 문제는 이러한 접촉이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피의자들은 밀집된 환경에서 불가피한 신체 접촉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피해자들은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접촉은 어디서든 범죄로 간주하여야 한다고 반박한다.
대한민국에서 성범죄는 다른 범죄에 비해 더 강한 사회적 낙인을 동반한다. 필요에 따라 ‘성범죄자 알림e’를 통한 신상 공개와 특정 직업에서의 취업 제한도 이루어진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억울하게 성범죄자로 몰렸을 때 피의자가 겪는 피해는 다른 범죄들보다도 그 영향이 더 크고, 회복하기도 더욱 어렵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게 판단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강제추행의 대 부분이 피해자의 진술을 유일한 증거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피의자의 억울함과 피해자의 불쾌함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증거가 부족한 경우, 수사기관과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과 피해자 보호는 사회 정의를 위한 필수 요소다. 그러나 억울한 피의자가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수사기관과 법원이 사실관계를 더욱 면밀히 살펴보면서 강제추행의 판단 기준을 정립하고, 이를 적용하려는 노력도 병행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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