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 사고에서 법적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2022년 12월 6일 오후 3시 56분쯤 강릉시 홍제동의 한 도로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A(당시 71세)씨가 몰던 티볼리 차량(2018년식)이 갑자기 굉음을 내뿜으며 가속하다 신호 대기 중이던 경차를 추돌했고, 이어 600m를 더 질주하다 도로 경계석을 들이받고 지하통로에 추락했다. 이 사고로 티볼리에 A 씨(할머니)와 함께 타고 있던 이도현(당시 12세) 군이 숨졌다.
이에 이도현 군의 가족이 사고 차량제조사 KG모빌리티(KGM·옛 쌍용자동차)를 상대로 9억 2,000만 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였지만, 2년여간 이어진 소송 끝에 재판부는 피고(KGM)의 손을 들어줬다. 구체적으로 원고(이도현 군의 가족)은 “전자제어장치(ECU)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급발진이 발생했고, 급가속 시 자동긴급제동보조시스템(AEB)이 작동하지 않아 사고를 막지 못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단 하늘나라로 떠난 이들에 대해 조의를 표하며, 법적으로 누가 옳고 그른지 가리기 위해 본 칼럼을 작성하려 함은 아니라는 점을 미리 밝힌다. 다만, 국민적으로 급발진 사고에 대해 꽤 큰 관심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문제 속에서 어떠한 법적 쟁점이 발생하는지에 대해 미리 알아둬서 나쁠 것이 없기에 몇 마디 첨언하고자 한다.
먼저 통계부터 살펴보자. 더불어민주당 허영(춘천·철원·화천·양구갑) 의원실에 따르면 자동차 리콜센터가 2010년부터 2024년 3월까지 14년간 접수한 급발진 의심 사고는 791건이다. 그런데 이 중 급발진으로 인정된 사례는 단 1건도 없었다.
또한, 현재까지 급발진 의심 사고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제조사가 배상 책임을 진 사례는 하급심 판결 4건 외에 대법원 최종 판결로는 단 1건도 없다. 하급심 판결 중 익히 알려진 사례는 2018년 5월경 호남고속도로에서 발생한 BMW차량 급발진 의심 교통 사망사고다. 당시 유족 측은 BMW코리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1심 재판에서 패소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BMW코리아 측에 은혜롭게도 ‘유족에게 각 4천만 원씩 배상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1심은 운전자 측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차량을 정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상태에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단정하기 부족하다고 봤지만, 2심은 정상적인 운행 중 제조사의 배타적 지배하에 있는 영역에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봤다. 다만, 이 사건 역시 상고심 계류 중이므로 국내에서 급발진과 관련해 차량제조사 책임을 인정한 확정판결은 현재까지 전무한 상황이다.
현행 제조물책임법은 ‘제조물이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상태에서 손해가 발생한 사실’등을 증명하면 제조물에 결함이 있었고, 그 결함으로 인해 손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피해자의 입증책임을 경감하기 위해 2017년 개정된 것이지만, 차량처럼 갈수록 기술이 고도화되는 제조물이 정상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상태였다는 점을 소비자가 입증하기에는 사실상 한계가 있다. 보통 소비자가 결함을 입증하려고 설계도면을 제조사에 요청해도 영업비밀 등을 이유로 제공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차량제조사에 대해 손해배상청구를 하기 위해서는 차량 급발진이 운전자의 운전미숙이 아니라 차량 자체의 결함으로 발생한 것인지 여부, 다음으로 급발진이 아니라 설령 운전자의 가속 페달 오조작으로 발생하였다고 해도 차량 급발진을 대비한 대체설계 미채용에 의한 설계상의 결함에 대해 제조사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여부가 관건이라고 보면 된다.
다만, 앞서 이야기한 대로 대법원은 위 두 가지 쟁점에 대해 제조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쪽이긴 하다. 대법원은 “운전자가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밟지 않은 상태에서 급발진이 일어나기는 사실상 어려운 점, 외국의 사례 및 관련 연구 조사 결과 급발진을 일으키는 자동차의 구조적인 결함은 발견되지 않는 점 등 고려할 때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밟지 않아야 할 상황인데도 비정상적으로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밟음으로써 발생한 것으로 추인함이 상당하다”고 하여 급발진 사고 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은 운전자의 가속페달 오조작이라고 판시한 바 있으며, 설계상 결함 여부에 대하여도 “통계상 급발진 사고를 일으킨 차량이 사고 전후에 동종의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통계상 거의 없으므로, 그 차량에 대하여 급발진 사고를 대비한 안전장치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 자동차가 통상적으로 기대되는 안정성을 결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판시하여 급발진 사고에서 대체설계 미채용에 의한 설계상의 결함도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대법원의 입장을 반대로 생각해보면 해결책도 찾을 수 있다. 판례가 급발진 사고의 직접적 원인을 운전자의 가속 페달 오조작으로 보고 있으므로, 사고 당시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밟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페달 블랙박스’를 통해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밟지 않았음을 증명한다면 차량 제조사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열려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과거 도현이 가족의 사고를 계기로 지난 21대 국회에서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이 5건이나 발의됐으나 ‘입법례가 없으며,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이유로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한 채 결국 임기 종료와 함께 폐기되었고, 현 22대 국회에서도 현재까지 제조물책임법 개정안만 8건이 발의된 상태다. 이들 법안 모두 고도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제조된 제조물의 경우 일반 소비자가 결함을 입증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에 따라 결함 입증책임을 소비자에서 제조사로 전환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또 일반 소비자들이 제조물과 관련된 자료에 접근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해 민사소송법상 문서제출명령보다 강화된 자료 제출명령 내용을 담고 있는 법안도 있다. 영업비밀이라 할지라도 결함 증명과 손해액 산정에 반드시 필요하면 자료 제출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하고, 제출명령 불응 시 해당 자료를 통해 증명하고자 하는 사실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한다는 취지다. 즉, 제조사가 영업비밀을 이유로 자료 제출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일을 막고, 소비자의 입증 부담을 완화하고 피해구제의 실효성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다만, 이 같은 개정안 내용들이 ‘공평의 이념’원칙에서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며 실제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는 이해당사자들 간 충분한 숙의가 필요하여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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