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진료기록부 작성, 어디까지가 적정한가?
의료 현장에서 환자의 치료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진료기록부 작성이다. 의료법 제22조 제1항에 따르면 의료인은 진료기록부를 갖추고 환자의 주요 증상, 진단 및 치료 내용을 상세히 기록해야 하며, 이를 서명하여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진료기록부 작성이 의료 행위보다 우선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의사의 진료기록부 작성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며, 그 기준은 어디까지일까?
진료기록부, 그 필요성과 법적 책임
일반적으로 의료인은 진료 후 즉시 기록을 남기고 있기에 단순한 미작성만으로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무면허 의료행위, 환자의 상해 또는 사망과 결부된 사건에서는 진료기록부 부실작성 혹은 미작성 문제가 함께 지적되어 법적 책임을 묻는 사례가 발생한다. 이러한 이유로 병원에서는 진료기록부를 철저히 관리하기 위해 의무기록팀을 운영하며, 기록 미비 사항이 있으면 의사들에게 작성을 독려한다.
이러한 시스템이 환자의 치료 연속성을 보장하는 데 기여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응급 상황에서도 의료진이 법적 불이익을 우려하여 기록 작업을 우선시하는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CPR 상황과 같이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조차도 환자가 사망하는 경우 기록이 없다면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이유로 기록 작성을 위해 치료 지시를 따르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는 등 행정 절차가 앞서는 상황도 발생하여 이에 대해 의료진 간의 갈등이 발생한 경우도 실제로 존재한다.
진료기록부 작성이 환자의 생명과 안전보다 중요한 것이 아님에도 법적 책임에 대한 우려로 인하여 발생하는 부작용이라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판례의 입장과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진료기록부 작성 기준과 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진료기록부 작성과 관련하여 ‘의사에게는 의료행위의 내용과 치료의 경과 등에 비추어 효과적이라고 판단하는 방법에 의하여 진료기록부를 작성할 수 있는 재량이 주어져 있으나, 진료기록부의 작성 목적에 비추어 환자의 상태와 치료의 경과 등 의료행위에 관한 사항과 그 소견을 환자의 계속적인 치료에 이용할 수 있고 다른 의료인들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으며, 의료행위가 종료된 이후에는 그 의료행위의 적정성 여부를 판단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이를 상세하게 기록하여야 하며, 진료기록부 작성 시기에 관련하여서는 의료행위의 내용과 환자의 치료경과 등에 비추어 그 기록의 정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당해 의사의 합리적인 재량에 맡겨져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즉, 대법원은 진료기록부 작성과 관련하여 의사의 재량권을 인정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원칙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료기록부는 환자의 지속적인 치료와 의료 행위의 적정성을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상세히 작성해야 한다.
▲진료기록 시기는 기록의 정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의사의 합리적인 재량에 맡겨진다.
이에 따라 판례는 병원의 피부관리사가 시술한 의료행위에 대해 피부관리차트에 즉시 기록한 후, 의사가 상당 시간이 지난 후 진료기록부에 옮겨 기재한 사건에 있어 의료행위의 정확성을 담보한 방법으로 의료행위를 진료기록부에 기재하였다고 볼 수 있다며 형사책임을 부정하기도 하였다.
진료기록부 작성, 현실적인 기준은?
일반적으로 민간 종합병원에서는 24시간 이내 작성이 원칙이나 환자가 사망했거나, 신중한 판단이 요구되는 경우에는 30~90일 이내 미비기록 처리를 권장하고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기록의 신뢰성을 유지해야 하며, 사실관계를 왜곡하거나 임의로 수정해서는 안 된다는건 당연하다.
결국 진료기록부 작성의 핵심은 정확성, 그리고 환자의 치료 연속성 보장이지 무조건적인 신속한 작성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의사들이 법적 처벌을 두려워하여 과도한 행정 부담을 떠안기보다는, 본질적인 목적을 고려한 유연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면서도,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하는 균형 잡힌 접근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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