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변호사협회] <선배법조인의 조언> 장영돈 변호사 인터뷰

Q <선배법조인의 조언> 인터뷰에 응하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선 변호사님의 간단한 약력 등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장충초등학교, 배명중학교, 상문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석사과정까지 졸업하였습니다.
1990년에 제3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1993년 사법연수원을 수료(제22기)한 후, 1996년 육군법무관으로 군복무를 마쳤습니다.
같은 해에 서울지방검찰청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하여 강릉지청, 부산지검, 서울동부지청에서 평검사로 재직했고, 안산지청, 서울중앙지검에서 부부장검사로, 부산지검, 대구지검, 안양지청, 부천지청, 서울서부지검에서 부장검사로 재직했으며, 2012. 7. 서울고등검찰청 검사를 마지막으로 공직을 마쳤습니다. 그 후 변호사 개업을 하여, 현재까지 13년간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법조 직역 중 검사를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바로 변호사로 일하기보다는 먼저 공직에서 일하고 싶었고, 실무수습 과정을 통해 활동적이고 구성원 간의 결속력이 강한 검찰이 적성에 맞는다고 느꼈습니다.
Q 1996년부터 2012년까지 검사로 약 17년간 근무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거나 보람이 있었던 사건이 있다면 어떤 사건이었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부천지청 부장검사로 재직하던 당시, 부천 관내 외곽순환도로 아래에서 유조차가 폭발하여 상판이 녹는 바람에 약 2달간 보수공사를 해야 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경찰은 유조차 운전기사와 소유자를 업무상실화죄로 입건하여 운전기사를 구속 송치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유조차 소유자가 외곽순환도로 하부에 불법컨테이너를 설치하고 기름을 빼돌려 왔던 사실을 확인하고 소유자도 구속하였습니다.
그리고, 외곽순환도로 하부의 국유지를 불법 점거하여 멋대로 임대를 주며 사익을 취하는 크고 작은 수십 개의 단체, 개인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들을 모두 입건하여 그 중 불법 점유면적이 큰 단체 순으로 대표자를 몇 명 구속하고 나머지를 모두 구공판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불법 점거를 풀고 나가지 않으면 엄벌할 것을 경고하여 모두 내보냈습니다. 그동안 이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부천시청은 검찰에게 크게 감사를 하였으며, 현재 외곽순환도로 하부 공간은 시민들을 위한 운동, 휴게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단순한 화재 사건으로 종결될 수도 있는 사건에서, 근본 원인을 찾고 이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수사하여, ‘배째라’식 관행으로 불법을 일삼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지역사회에 크게 기여한 사례라고 생각하여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Q 처음 검사로 임관하셔서 서울지방검찰에 근무하실 때 사건이 많아서 잦은 야근과 휴일 근무를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당시 주임검사로서 한달에 대략 몇 건 정도씩을 처리하셨나요? 현재 검찰의 사건 처리 지연이 큰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실제로 근무해 본 결과 서울지방검찰청이 다른 검찰청과 다른 특성은 어떠한가요?
서울지검 초임 검사 시절, 정확한 사건 수는 기억이 안 나지만 한 달에 평균 수백 건의 사건을 처리해야 했고, 아직 일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라 마치 다시 수험생으로 돌아간 것처럼 불철주야 일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매 월말 기준으로 미제사건을 챙겼고, 특히 3개월 초과 미제 사건을 엄청나게 신경 썼습니다. 요즘 검찰 내부 사정은 잘 모르지만, 아마도 검사들이 모두 너무 많은 사건을 배당받다 보니 한계에 부딪친 것이라 생각되고, 예전보다 사건처리할 때 지켜야 하는 규칙, 절차가 늘어나다 보니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검찰뿐 아니라 경찰에서의 사건 처리지연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당시에는 검찰이 경찰을 지휘하는 관계여서 경찰의 사건처리가 늦으면 신속한 처리를 독려하곤 했는데, 요즘은 경찰에서 사건이 방치되다시피 지연되어도 전혀 통제할 수가 없습니다. 경찰 내부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울지검은 국내 중요 사건들이 집중되는 곳이고, 일반 형사사건조차 다른 검찰청보다 난이도가 높은 사건이 많았습니다. 저는 부부장시절에도 서울중앙지검에서 한번 더 근무했었는데, 그때는 경력이 있는지라 까다롭고 어려운 사건(속칭 ‘깡치사건’)을 주로 맡아 아주 힘들었습니다. 검사 시절을 통틀어 제일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
Q 1998년부터 2년간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에 근무하실 때 대형 검찰청(본청)과 달리 강릉지청은 소규모여서 근무하시는 데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가요?
지청은 아무래도 본청보다는 사건 수와 난이도가 떨어지니까 업무 자체는 수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원도 얼마 안 되다 보니 다른 검사들 및 일반 직원들과도 좀 더 가깝게 지냈습니다. 일과 후에 가족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Q 2005년 수원지방검찰청 안산지청에 처음으로 부부장검사로서 부임하셨는데 부부장검사로서의 업무는 평검사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르고(배당받는 사건의 종류 및 수 등에서) 부(部) 내에서 부부장검사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요?
부부장검사는 부장검사가 되기 직전의 보직이고, 업무는 평검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다만, 힘들고 어려운 사건이 주로 배당되고, 전결로 처리할 수 있는 사건 범위가 늘어나게 됩니다.
부부장검사는 결재권자인 부장검사와 일반 평검사들 간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Q 2009년 수원지방검찰청 안양지청의 개청과 동시에 부장검사로 부임하셨는데 처음으로 문을 연 지청에서 개청 등과 관련하여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당시 소년전담 부장검사로 근무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거나 보람이 있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검사와 범죄예방위원간에는 업무상 어떤 관계가 있나요?
안양지청에 개청 멤버로 처음 부임했을 때, 시설이나 인원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개청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집기 조달, 인원 배치뿐만 아니라 하다못해 주차장 표지판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준비했고, 안양 지원과 함께 준비한 개원, 개청식도 무사히 마쳤습니다.
소년전담 부장으로서, 안양, 군포, 의왕, 과천 범죄예방위원회를 조직하고 활성화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범죄예방위원회는 검찰 유관기관으로서 소년범 교화, 장학사업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전국적인 조직입니다. 개청 후 안양지역 범죄예방 한마음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던 기억이 납니다.
Q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 개업을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느 날 문득 때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검찰에서 개인적인 성장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느꼈고, 더 늦기 전에 새로운 분야에서 새출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약 17년간의 검사 생활을 마친 소감은 어떠했나요?
저의 30대, 40대 인생의 가장 전성기를 검찰에서 보냈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힘들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검사라는 직업이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화려하거나 멋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고된 격무와 사건이 주는 중압감에 시달리는 힘든 직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검사들이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묵묵히 견디며 일하고 있습니다.
그 시절을 견딜 수 있었던 건 같이 고생하는 동료 선후배 검사님들과 직원들이 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저는 많이 성장할 수 있었고, 그들은 지금까지도 저를 지탱해 주고 있는 버팀목입니다.

Q 지금 검찰청을 없애고 공소청과 중수청으로 분리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는데 이에 대한 의견은 어떤가요?
검찰은 워낙 권한이 막강하고, 중요한 일을 수행하다 보니, 끊임없이 견제를 받았습니다. 물론 검찰 역시 다른 여러 기관들과 마찬가지로 완벽하지는 않고, 실수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의 권한과 기능을 약화시키는 것도 모자라 아예 없애버리는 방법은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기는 하나, 세부사항을 추진할 때 좀 더 신중했으면 좋겠습니다.
Q 변호사로서 처리하신 사건 중에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변호사로서도 13년 동안 일을 하며 많은 사건을 처리하였고, 성공한 사건도 많지만, 그중에 청각장애아동을 학대하였다는 혐의로 기소된 언어재활사에 대해 무죄를 받아낸 사건이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학대 상황을 목격하였다는 아동의 조모를 증인신문하여, 그녀의 증언이 신빙성이 없음을 부각시켜 무죄를 이끌어 냈습니다. 먼저 증인이 허위 증언을 하도록 놔두었다가 미리 준비한 반대증거를 제시하며 탄핵하는 방법으로 일종의 수사기법을 법정에서 활용하였습니다. 의뢰인은 그동안 고생하여 취득한 자격을 한순간에 잃을 수 있는 사건이었는데, 무죄 선고를 받아 재활사 자격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Q 법조인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및 법조 원로로서 후배법조인에게 조언하여 주시고 싶은 사항은 무엇인가요?
제가 검사로 활동하시던 시기와 변호사로 개업하던 시기, 그리고 현재의 법조계의 상황은 너무나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먼저 검사, 판사뿐 아니라 변호사들까지 법조인들의 위상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검찰은 권력을 남용하는 오만한 집단으로 낙인찍혀 아예 검찰청을 없애버리려고 하고 있고, 법원 역시 그 권위가 예전 같지 못합니다. 많은 판사들이 사법부의 권위 추락에 실망하여 옷을 벗고 있습니다. 변호사 업계 역시 과다 배출되는 변호사들로 인하여 과당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힘든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조인들에게는 사회 정의 실현, 질서 유지의 마지막 보루라는 사명감, 책임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긍지가 꺾여서는 안 됩니다.
변호사로서도 책임감을 가지고 사건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결국 오래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Q 변호사님의 향후 계획은 어떠한가요?
현재 변호사로서 맡은 사건을 잘 처리하고 의뢰인들이 만족해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향후 몇 년간은 변호사로서 더 활동하고 싶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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